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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특공무술백과 > 정의 및 탄생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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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언 한국역사는 숱한 외침과 그에 따른 응전의 과정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전쟁과 변란이 많았다. 그에 따른 특공전 관련 기예들을 시대별로 소략하여 현재 사회체육 및 생활체육으로 발전하고 있는 특공무술을 고찰하고자 한다.
1. 한국의 선사시기 도구사용과 청동단검의 의미 선사시대부터 구석기시대를 거쳐 신석기시대에 이르기까지 맨손과 도구를 이용한 동물과 인간과의 접전은 피할 수 없는 생활 모습이었다.
선사시기로부터의 도구 사용은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 장창이나 단창의 존재와 별도로 짧은 단검의 사용이 병행되었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청동단검은 예기치 못한 경우나 은밀히 잠입하여 접전할 경우에 유용한 특수상황의 전투수단(특공무술)으로서 그 가치가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2. 한국 고대시기 특공전의 사례와 관련기예 신라 황창량 설화를 통해 엿보는 신라의 특공무술 실기와 화랑후예·고구려 안시성 전투 속에 드러난 잠입전투작전에서 고구려군은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허리를 굽힌 자세를 유지하여 단창술, 대도술, 부월술을 펼쳐 특공무술 기예를 엿볼 수 있었다.
3. 한국의 고려시기 특공전의 사례와 관련기예 강조부대의 검차전 운영과 특공전투·척준경의 소부대 특공전 사례
4. 한국의 조선시기 특공전의 사례와 관련기예
조선 초기의 사인소 운영과 특공전적 무예실기의 훈련·김덕령 의병부대와 곽재우 의병부대의 돌격전·이순신 부대의 척후병 운용에서 보면 단독의 척후병이나 10인 이내의 척후소부대를 운용한 사실 등에서 특공전투의 기민한 역동성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Ⅱ. 결론 위의 관련된 사항들을 보면 선사시대의 몰이사냥부터 정규전에 이르기까지 특수한 전투 기예의 운용이 필요했고 정규적 전쟁양상과 다른 특수 상황과 연결되는 전투수단으로 발전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이후 역사시기로 접어들어 고대와 고려 그리고 조선에 이르기까지 비정규전이나 유격전등의 특수전투상황은 숱하게 전개되었다.
한국역사상 특공전투사례는 숨가쁜 과정이자 민족공동체의 유지에 소중한 몸짓이자 호국수단이었다. 따라서 대한민국 시대에는 역사적 전통에 바탕을 둔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특공무술이 1980년 개발되어 1981.4.22일 진중무술로, 1986년 국방무술로 발전되어 보급됨이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이로써 특공무술은 대한민국 시대에 국가를 호위하는 무술, 생활무술, 특성화된 무술로 발전되어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
특공무술은 국가를 보위하는 국방 호국무술로 어떠한 시대적 상황에서도 그 시대가 요구하는 최고무술로서의 자리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여타운동(태권도, 유도, 검도, 합기도, 복싱, 격술, 봉술, 격투기)의 장점을 겸허히 받아들여 특공무술화하여 포용하였다. 이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무술정신으로 즉, 특공무술은 “모든 것을 다루고 수용하여 새롭게 창출하는 무술”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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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는 특공무술의 기원과 관련된 중요한 시점으로, 소위 ‘오일 쇼크’라는 말이 지금도 생생하리만큼 혼란이 극심하던 때였다. 오일 쇼크에 빠져 국제사회의 미래는 불투명하였고 비행기 납치 등 도처에서 초강력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었으며, 이런 와중에 세계는 정신적, 물질적인 공황 상태에 휩싸여 지구촌 전체가 혼돈과 정체의 늪에 빠진 역사적 과도기였다.
이러한 시점에서 1977년 10월 13일 발생한 비행기 납치 테러사건은 ‘세계는 곧 하나’라는 국제관계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초유의 강력한 위험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특공대들의 활약상이 텔레비전에 생생하게 방송 되면서 우리나라에도 대테러 특수부대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었다.
북한에서는 1963년경부터 격술(가라데를 응용한 무술)이 보급되어 북한군의 주력 무술로 활용되고 있었는데, 격술 수련을 통하여 강화된 체력과 실전능력이 당시 우리 군의 무술보다 우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격술과 비교해 볼 때 우리 군 무술의 취약점이 쉽게 노출이 되고 압도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경호실 및 군 관계당국은 한국적 상황에 맞고 전쟁터에서도 쉽게 응용할 수 있는 타격기와, 유술기, 무기술, 집체술을 모두 단기간에 익힐 수 있는 특수한 무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기존의 국방체육의 일환인 태권도만으로는 한계를 느끼게 되었고 이에 따라 필요한 특수한 무술을 물색하게 되었다.
대통령 경호실 지시로 이 임무는 특전사령부에 하달되었다. 특전사령관(정병주)은 제5공수여단장 장기오 장군에게 특공무술(특전무술)을 개발하라는 명령을 지시하였다. 이로써 제5공수여단 25대대 15지역대 전원은 특공무술 개발에 착수하여 140페이지 교안을 완성하고 술기를 지도하였다.
1980.11월 시범으로 군 특수무술로 인정받았으며 1981.4월에 육군본부에서 시범을 보임으로서 특공무술의 명명과 술기를 진중무술로 인정받았다. 시범은 단도살상술, 기본치기, 선수, 후수, 특공형, 권총술, 야전삽술, AK방어술 등으로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도 필살이 가능하도록 고안된 술기로 이루어졌다. 이로서 육군에 전통으로 하달되어 특공무술이 공식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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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명 |
박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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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간 |
1980~2003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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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분 |
창시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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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및소재지 |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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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경력 |
육군 만기제대 수도경비사근무 특수경호대 근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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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력 |
태권도 : 오도관(허용), 무덕 관, 지도관(이리중태권도부), 청도관(송탄) 권투 : 이리체육관 유도 : 상무관, 종합체육관 합기도 : 무문관, 국기관(김창수) 헬스,역도 : 종합체육관 검도 : 인천체전 거합 쿵푸 : 소림권(김형일) 투검술 : 경호대 거합도 : 경기 송탄 단전호흡 : 정각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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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 지도경력 |
대한합기도 제9연무관사범(1975) 국술원합기도 경기본관사범(1976) K-16 서울비행장 00경비대대 위촉사범(1977) 제2군 태권도 대표선수코치(1978) 제 5공수여단 위촉사범(1980, 특공무술교범140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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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지도 경력 |
1980 - 1986년 국립경찰대학 무도교관 1987 - 1992년 우디아라비아 중앙경찰학교 및 경찰대학 무도교관 1993 - 1996년 사우디아라비아 육군사관학교 및 국방성VIP경호대 무도교관 1996 - 현
국제특공무술연합회 회장 1997년 - 현 명지대학교 사회교육원 무예학과(특공무술, 기학) 지도교수 1999년 - 현
대한 경호인 협회 공동회장 2000년 - 현 무의단공 협회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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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공무술은 시대적 최강의 무술이다.대한민국 국호를 가지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는 국가 안위를 담당하는 군 특수무술이 최강의 무술이라고 본다.
1978~1979년 - 차지철 경호실장의 지시 하에 여러 무술단체가 대통령 경호실 연무관에서 시범을 여러 차례 보였다.
1980 - 본격적인 군 무술 개발에 착수된다. 특공무술(특전무술)이 개발 완성된 곳이 제5공수여단이다.
제5공수여단에서 특공무술을 개발할 당시 민간의 무술지도사범(현 국제특공무술 연합회 박노원 회장)을 위촉교관으로 6개월간(3개월간은 5공수여단에서, 3개월은 5공수여단 교관들이 경찰대학 상무관에서)교육을 받아 술기와 교안을 완성하였다.
1981.4월 - 군부대 진중무술로 국방무술로 채택되었다.
1986. 4월 - 육군본부발행으로 특공무술 교육참고(21-20-1)를 발행(육군본부에 근무하던 황인기대위 3군사관학교 출신, 경찰대학 무도교관 박노원사범을 찾아 자료 및 기술을 정리)하여 특전사 전 여단에서 특공무술을 교육시키게 되었다.
2005. 1월 - 특전사령관 지시에 의거 특공무술로 용어를 재정립하였다. 북한군 격술을 능가할 수 잇는 일격필살의 전장무술로 교리재정립 및 대외 시범 자료 활용 지시를 하였으며, 재정립 교리로 각 대대교관 집체교육(5공수여단을 제대한 박만규 관장의 요청으로 현 국제특공무술연합회 박노원 회장이 직접 3일간 부평시 작전동 청풍무술원에서 교관요원 교육실시)을 실시하였다. 이로써 사단법인 국제특공무술 연합회는 국내는 물론 국외에 군 무술의 계보를 이어 민간무술로 저변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해외 24개국에 군부대는 물론 대학 및 일반 도장에 300개의 수련관이 활동 중이다. 지금까지 정황으로 본다면 박노원 회장은 특공무술의 술기 창시자라고 인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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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수부대에 특공무술을 보급하여 특공무술 최초 교관들을 양성한 박노원 사범(현 국제특공무술연합 회장)은 1980년도 말에 "단도살상술, 기본치기, 공격수(선수), 방어수(후수), 권총술, 중봉술, AK방어술, 야전삽, 기본형, 특공1형, 특공2형, 대검형, 기합짜기, 낙법, 약속대련" 등을 군 특수성에 맞게 정립하여 최초의 특공무술교본(140쪽 분량)을 감수하여 5공수여단의 특공무술 교관양성에 활용되고 있으며 본 교본은 현재까지 국방부 및 특수전사령부의 무술수련교재의 초안으로 활용되고 있다. 1982년 국립경찰대학교 무도교관 재직시에는 체포술, 연행술, 경봉술 등을 개발 정립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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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차원에서 특공무술 보급해 오다가 1983년부터 새로운 술기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여 우선 기본자세(10), 수기방어(10), 수기공격(16), 족기술(16), 낙법 등 입문단계인 기본술기를 정립하여 체계를 세우고 "기본자세연결형, 유단기본형, 특공도형(장도형), 특무형, 충무형, 연무형, 장검형, 인무형 등과 각 단에 맞는 호신술부문과 낙법 , 꺽기술은 이원배(국제특공무술연합회 3대총사) 등이 각자 맡아 정립하였다.
이렇게 국제특공무술연합회 임원들이 특공무술의 전반적인 술기들을 직접 창안 개발하여 특공무술 술기를 완성하여 특공무술의 위상을 높이고 독창적인 고유술기를 보유하게 되었으며 본 술기들은 현재 모든 특공무술의 유파를 불문하고 사용되어 지고있다.
또한 1992년 특공무술 교본(저자 장수옥) 편찬 시에 상당량의 술기 초안을 무상으로 제공하여 특공무술 교본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하였으나, 자신 혼자서 기술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박노원 회장은 사우디 및 에티오피아 파견되어 있을 시 왕실 경호요원들에게 특공무술을 지도하면서 특별 경호수행에 필요한 근접경호 , 외곽경호 , 경호대열 등의 경호이론 및 경호기법을 정립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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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국제특공무술연합회는 1997년 1월부터 12지걸음 및 특무검도, 유단검맞서기, 본국검법, 성국검법 등을 창안하여 정기적 실시하던 "특공무술 지도자 교육"을 통해 보급하였다. 한편 박노원 회장은 1978년에 전수 받은 반태술 , 1995년에 정립한 평수법과 중단봉 , 쌍절곤 , 비도술(투검) 등을 정립하여 1998년 "특공무술지도자교육"을 실시하여 보급하고, 기합짜기 외에는 특별한 내공법이 없어 특공무술의 단점으로 지적 받아온 내공수련법을 보안하여 새로운 내공술(특무단공)을 창안, 완성하여 1998년 1월부터 "특공무술 지도자교육"을 실시, 보급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1998년 3월 6일자 "스포츠 서울신문"에서는 '무의단공 (특무단공)'이라는 이름으로 취재 기사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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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부터 성무형 , 광무형 , 현무형 , 단무형 , 심무형 , 무무형 등 고단자에 적합한 실전 무술형을 개발하여 실용화 중이며 무기별로 파동검 , 칠지검 , 부월술(도끼) , 쌍검 등을 보급 준비중이며 고구려 조의선인들의 특공기법을 구체적으로 정립하여 보급할 방침이다.
수련인의 구별에 따라 이해가 쉽고 재밌게 구성하고 발육에 도움이 되는 '어린이 특공무술', 성인체력관리에 필요한 성인특공무술 , 대체의학부분인 활인건강특공무술 , 여성 전용 특공무술 등으로 세분화시켜 성별 및 사람의 특성에 따른 술기개발에 역점 을 두고 술기 개발에 혼심을 다하여 세계적인 최고품격의 무술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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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특공무술 변천과정 표에 보면 "1980년 11월 21일 5공수(현 특수임무단) 제 25특전대대 15지역대에서 민간의 무술지도사범에게 지도를 받아 무술을 개발하여 특전사령관, 각 여단장, 대대장, 작전참모 배석 후 시범을 실시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민간의 무술지도사범은 "국제특공무술연합회에서 회장을 현재 역임중인 박노원"이다.
1980년 당시 특전특공무술 교범의 모든 기술지도는 박노원사범(당시)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후, 86년에 육군본부에서 특공무술 교육참고(21-20-1) 교재를 발간하였는데, 이 교재는 그 때 당시 육군본부의 황인기 대위(3사 출신)가 경찰대학의 무도교관으로 있던 박노원 사범을 찾아가 자료 및 기술을 정리하여 교재를 발간하였다.
2005년 1월 15일 특전사는 특전사령관 지시에 의거 특공무술로 명칭을 재정립하고, 교리 또한 재정립하여 교관들에게 집체교육을 실시했다.
이 때 5공수여단을 제대한 박만규 관장의 요청으로 현 국제특공무술연합회 박노원 회장이 직접 3일간? 부평시 작전동 청풍무술원에서 교관요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했다.
1980년 6월 제5공수 여단장인 장기오 장군은 특수 군무술의 육성을 위하여 박노원(현 국제특공무술연합 회장)사범을 위촉하였고 6 개월간 실전무술교육을 통하여 군 교관 50여명을 양성하게 되었다. 그 해 양성된 교관들과 생포된 무장공비들간의 대련에서 특공무술을 익힌 특전사 교관들이 공비들을 간단히 제압함으로써 특공무술의 우수성이 다시 한번 확인 되었다.
그 후 같은 해 특공무술은 장기오 장군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각 부대에 급속히 자리를 잡았으며 박노원 사범(국제특공무술연합회장)은 군부대의 특성상 적합한 기술창안에 경주하여 "단도살상술, 기본치기, 공격수(선수), 방어수(후수), 권총술, 중봉술, AK방어술, 야전삽, 기본형, 특공1형, 특공2형, 대검형, 기합짜기, 낙법 등을 군 특수임무 수행에 적합도록 새로 개발하였다.
이듬해인 1981년 1월 박노원 사범이 양성한 교관들은 국방부 육군연병장에서 참모총장을 포함한 각 주요인사를 모시고 시범을 보였으며 새로 등장한 특공무술의 위력을 인정한 관계자들은 특공무술을 군 정규과목으로 채택하게 되었고, 육군참모총장은 전군에 특공무술을 보급하라는 명령을 하달하였다.
이후 박노원 사범은 1986년까지 국립경찰대학교 무도교관으로 재직하여 경찰들에게도 특공무술 술기를 지도하였으며 1987년에는 국가지원 사업일환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및 인접 중동국가에 파견되어 육군사관학교 , 경찰대학 , 국방성 왕실경호대 등에 특공무술과 경호무술을 10여 년간 지도하였다.
이로써 특전사령부 예하 부대를 비롯한 각 특수부대와 일반 부대까지 특공무술이 보급됨으로써 육군사령부에선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국방무술로, 또 대통령 경호실에서는 대통령을 보위하는 경호무술로써의 위상을 자리잡게 되었으며, 그 위상이 해외에까지 뻗어나가 특공무술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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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 : 음과 양의 원리이고 하늘과 땅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상징
지구본 : 세계 만방에 본 무술을 전파하고자 하는 정신자세를 상징
주위 주황색 : 지구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생명의 원천인 태양빛과 에너지를 지닌 충만한 기(氣)를 나타냄
하늘색 : 맑고 깨끗한 우주 전체를 상징함
검은띠 : 고도의 수련과정을 거친 고수의 권위인 블렉벨트를 상징함
사람 : 경지에 뛰어 올르려고 수련하는 무도인을 상징
자세 : 오른손 - 손끝이 테두리를 뚫고 세계로 내품고 있는 기(氣)를 표현 함
왼손 - 고도로 단련되고 숙달된 기예를 뜻하는 무도인의 권위 상징인 날카로운 검을 쥐고 무도자로
무도의 극을 추구 하는 자세의미.
한글로그 : 한국 국적의 전통무술임을 나타냄
영문로그 : 세계인이 확연히 알 수 있게 국제공통어로 나타냄
Brand Identity : 2007년10월31일 부로 국제특공무술연합회 업무표장 등록증 이 특허청으로부터 상표법에 등록 되었습니다
업무표장을 사용할 업무(LIST OF BUSINESSES ) 1. 연합회 가맹 체육관 간판 및 체육관내 시설물 2. 군부대, 경찰, 타단체 및 생활체육에 특공무술보급 목적으로 연합회 인가 후 3. 특공무술해외지부 설치 및 국제교류 4. 연합회 및 특공무술 운영 전반에 필요한 지원 5. 특공무술 수련법 연구 및 홍보6. 특공무술 지도자양성 및 승단자격 심의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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